2021도11938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간) (나) 파기환송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범죄에서 피해자가 심리적 항거불능 또는 현저한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 1999년경 조카인 피해자(당시 19세)를 강간한 후 2018년경까지 피해자와 함께 생활한 피고인은 경제적 예속과 심리적 외포로 피고인의 지시나 요구를 거절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던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성폭력처벌법위반(친족관계에의한준강간)(이하 ‘예비적 공소사실’) 등으로 기소됨
☞ 원심은, 피해자가 예비적 공소사실 범행 일시경인 2015~2018년 무렵 피고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관계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취미·사회활동을 하며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자율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이 곤란할 정도로 피고인에게 억압당하였다거나 통제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음
☞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피해자는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이혼과 보호자인 아버지의 사망, 경제력 부재 등으로 마땅한 거처가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보호자로 여기고 의존하던 14세 연상의 외삼촌인 피고인으로부터 19세 무렵 최초 성폭행을 당하였고, 그 충격의 영향 아래 피고인의 지속적인 폭행, 폭언과 통제, 애정과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양면성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간음행위가 있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친족관계 내에서 심리적·경제적으로 강한 지배·예속관계를 형성하여 온 것으로 보이는바, 이러한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볼 때, 피해자는 위와 같은 심리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로 인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하여 자유로운 의사 형성과 결정에 심각한 곤란을 겪고 주변과 단절된 채 피고인의 강압적인 성행위 요구에 자포자기 상태로 순응하여 오면서, 그와 같이 지속된 심리적 억압 상태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여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범행 당시 피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대항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심리적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고 볼 소지가 크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것은 준강간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아,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함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한 상고이유에 관하여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주위적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강간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예비적 공소사실에 대한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예비적 공소사실의 요지
원심에서 추가된 예비적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피해자(여, 1979년생)의 외삼촌이다. 피해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던 중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망하게 되어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홀로 지내게 되었다. 피고인은 1999년경 조카인 피해자(당시 19세)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교통사고로 인해 일을 그만두고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것을 알게 되어 피해자를 자신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거주하며 일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 무렵 피해자가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알게 되자 피해자를 피고인의 승용차에 태워 인근 모텔로 끌고 가 피해자에게 ‘좋아한다, 왜 나를 두고 바람을 피우냐’라고 하며 베개로 피해자의 얼굴을 누르고 주먹으로 피해자의 허벅지를 수회 때리고, 피해자를 1회 간음한 이후 피해자를 논산시에 있는 피고인의 집으로 데려와 거주하게 하면서 피고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피해자에게 집안일을 하게 하고 외출 등을 통제하는 한편, 피해자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욕설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피해자에게 겁을 줌으로써 피해자로 하여금 피고인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감시자로 생각하게 하고 피고인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피고인의 말과 행동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하였다. 피고인은 2015. 5. 3.경 충남 보령시에 있는 ‘○호텔’ 내 호수 미상 객실에서, 위와 같이 1999년경부터 지속되어 온 경제적 예속과 심리적 외포에 의해 피고인의 지시나 요구를 거절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던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피해자의 음부에 피임약(노원질좌제)을 넣은 후 피해자의 몸 위에 올라타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여 1회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친족관계인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간음한 것을 비롯하여 그 무렵부터 2018. 2.경까지 사이에 같은 방법으로 원심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와 같이 총 5 회에 걸쳐 친족관계인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 등을 들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예비적 공소사실 기재 각 일시 무렵에 피해자가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음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비적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1) 피해자는 1999년경부터 2012년경까지 피고인의 집에서 거주하며 피고인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는 등 경제적 의존관계였던 것으로 보이나, 2015년경부터는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자립이 가능할 정도의 독자적인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생활하였다. 예비적 공소사실의 범행 일시경인 2015~2018년 무렵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된 관계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피해자가 성행위를 거부할 경우 피고인이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거나 집에서 나가라는 등의 협박을 한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
2) ① 피해자는 2015년부터 2018년 무렵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거나 수영대회에 나가 메달을 받기도 하는 등 지적․신체적 능력 측면에서 피고인에게 의존하던 20대 때와는 달리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② 피해자는 피고인의 변태적 성행위 요구나 나체사진 촬영 요구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③ 피해자가 그 연령대에 비추어 경제력이 부족해 보였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제1심 증인 공소외 1의 진술은 주관적 느낌에 불과하다. ④ 피고인의 통화내역은 2014. 10. 25.경부터 2018. 12.19.경까지 총 1,872건이 확인되었는데, 이 중에서 피해자와의 통화기록은 53건이고, 각 통화시간은 짧게는 3초에서 길게는 36초에 불과하였다. ⑤ 피해자는 2016년 말경 피고인의 집을 리모델링할 때 약 1개월간 피고인의 집을 떠나 직장동료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공사가 끝나자 자발적으로 피고인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예비적 공소사실 각 범행 당시 피해자가 자율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이 곤란할 정도로 피고인에게 억압당하였거나 통제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고, 설령 통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피고인의 성행위 요구에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3) 피고인의 폭행은 피해자가 20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 1년에 1, 2회 주먹으로 팔과 허벅지를 때리는 정도였다. 피해자가 30대가 된 이후로 피고인의 신체적 폭행은 없었고 물건을 부수거나 집어던지는 등의 행위를 한 정도에 불과하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동만으로 심리적으로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빠졌다고 보기 어렵다.
4) 전문심리위원 공소외 2는 ‘적어도 이 사건 종반부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정신적으로 완전히 억압되어 있었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감정증인 공소외 3은 ‘피해자가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고, 이러한 사정이 피해자의 무기력증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19년 동안 이어진 성행위에 대해서 저항을 할 수 없었다고 볼 가능성도 충분하나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5) 이 사건은 성적 접촉에 대한 피해자의 심리적 저항을 감소시키기 위한 길들이기 작업이 거의 진행되지 않은 채 1999년경 피고인의 일방적인 성폭행에 의하여 첫 번째 성적 접촉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로도 길들이기라고 볼 만한 행위가 나타나지 않아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에 포섭시키기 어렵다. 또한 예비적 공소사실 당시 피해자는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인 판단과 의사 결정을 하고 경제․사회 활동을 하며 초기의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 피고인의 폭력적 성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의 폭력은 간헐적으로 행하여졌으며 피해자가 피고인의 변태적 성행위 요구나 나체사진 촬영 요구를 거부하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학습된 무기력 또는 학습된 공포심의 상태에 있어 심리적으로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 대법원의 판단
1) 관련 법리
가)「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고 한다) 제5조 제3항, 제1항 및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을 간음한 자를 형법 제297조의 강간한 자와 마찬가지로 취급하여 가중처벌하고 있다. 친족관계에서의 강간 또는 준강간 행위는 친족관계에서 우러나오는 특별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이를 성폭력범죄의 실행에 이용하는 특성이 있어서, 피해자와 친족 구성원에게 매우 큰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을 남기는 반인륜적 범죄이다. 이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피해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가족 제도와 사회․윤리적 기본질서를 근간부터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가중처벌의 필요성이 있다.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범죄의 경우 친족관계 자체에 의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내재하는 신분상ㆍ정서상의 우열관계, 친족간의 부양이나 보호 또는 피보호의 관계에서 나오는 상호 신뢰성․의존성과 경제적 예속의 특성,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구성원 간 원만한 관계나 가족공동체 유지라는 가치를 우선시하고 그 결과 구성원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억압적 기제가 작동하는 현실,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 등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주는 낙인효과와 위축감 등으로 인하여, 성범죄 피해자로서는 그 피해사실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에서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폭력범죄를 가능하게 하였던 가족공동체 내의 구조적 폭력 상태에 묵인․순응한 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으로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러한 성적 침해행위가 가해자의 우월한 영향 아래에서 장기간 고착화되어 은밀하게 반복․계속되기도 하므로, 이와 같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나) 형법 제299조 준강간죄는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인하여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그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치 않는 성적관계를 거부할 권리라는 소극적 측면을 말한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등 참조). 준강간죄에서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21.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심리적 항거불능 또는 현저한 항거곤란은, 특별한 친족관계나 정신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 등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행한 폭력, 성적 학대나 감시와 통제 등의 점진적․누적적 영향으로 말미암아 열악한 지위에 놓이게 된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하여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과 결정에 심각한 곤란을 겪으면서 그와 같이 지속된 심리적․정서적 억압 상태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여 피고인의 성적 침해행위 당시 그에 맞서려는 대항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자포자기의 상태에 있었던 경우에도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피해자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행위 역시 준강간죄를 구성할 수 있다.
피고인의 성적 침해행위 당시 피해자가 심리적 항거불능 또는 현저한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는지는 피고인과의 관계나 구체적인 범행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피해자의 처지와 관점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 경위, 계기나 정황, 행위의 내용과 방법, 행위가 반복․계속된 기간, 피고인과 피해자가 보인 반응의 변화, 피해자의 나이․경험 등 특성, 심리적․정신적 상태, 피해자의 주변 상황과 환경 등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2) 구체적 판단
가) 원심판결 이유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피해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왕래가 끊어지고 아버지와 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논산시에 있는 친조모의 집에서 지내면서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피해자는 청주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홀로 생활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한 후 친조모의 집에서 지냈고, 이후 수원시에 있는 공장에서 1년 정도 일하였으나 교통사고로 몸을 다쳐 일을 그만두고 1999년경(당시 피해자는 19세였다) 논산시로 돌아왔다.
(2) 피해자의 외삼촌인 피고인은 미혼으로 피해자보다 14세 연상이다. 피고인은 논산시에서 거주하며 목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조카인 피해자가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피해자에게 자신이 운영할 계획인 비디오 가게에서 일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를 수락한 피해자를 데려와 피고인이 개업한 비디오 가게에 딸린 방에서 숙식하며 일하도록 하였다.
(3) 피해자가 비디오 가게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1999년 가을경 피고인은 피해자가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알게 되자 피해자를 강제로 피고인의 차에 태워 갈대밭으로 이동한 다음, 차 안에서 피해자의 옷을 벗기며 성폭행을 시도하였고 피해자가 저항하자 피해자를 인근 모텔로 데리고 가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베개로 피해자의 얼굴을 누르고 주먹으로 허벅지를 때리며 강제로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여 간음하였다(이하 ‘최초 성폭행’이라고 한다).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사랑한다. 나를 두고 딴 놈과 바람을 피울 수 있느냐”고 말하였고, 성행위를 끝낸 이후 피해자를 다시 차에 태우고 난폭운전을 하며 “사랑한다. 왜 몰라주느냐.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말을 반복하면서 피해자에게 답변을 강요하였다. (4) 최초 성폭행 이후 얼마 뒤 피해자는 외조모(피고인의 모친)와 피고인이 함께 거주하는 집(이하 ‘피고인의 집’이라고 한다)으로 옮겨 함께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피고인은 최초 성폭행 이후 2018년 5월경까지 약 19년간 동거하는 모친의 눈을 피하여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 비밀리에 성행위를 하였다. 이는 피해자가 20대일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피해자가 30대일 때는 분기에 한 번 또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의 빈도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피고인은 동거하는 모친이나 누나 등 친인척과 지인들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성적 접촉을 철저히 숨긴 채 외형적으로는 통상적인 외삼촌과 조카 사이의 관계로 보이도록 행동하였다.
피해자는 수사기관 이래 원심에 이르기까지 “20대 때는 비디오 가게 일이 끝나면 모텔로 그냥 끌고 갔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왜 그러냐고 그랬다. 저항을 해도, 빌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 피고인은 둘이 있을 때 부부라고 생각하고 매번 이 날 부부생활을 하러 가야 하니까 준비하라고 한다. 모텔로 가기 전 폭언을 하여 강압적으로 가게끔 만들고, 내가 몸이 아프다거나 모텔에 가기 싫다고 하면 폭언과 욕설, 물건을 던지거나 문을 쾅쾅 여닫는 등의 폭력적 행동을 하여 몇 시간 동안 계속 시달려야 한다. 그게 지속되다 보니 그냥 끌려서 따라가게 된 것 같고, 30대 이후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이 생활이 끝나겠구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진술하였다.
피해자는 20대 중반 새벽에 도망가려고 하다가 “네가 나가는 꿈을 꿨다.”라고 말하면서 서 있는 피고인과 마주쳐 실패한 적이 있고, 20대 때 자해를, 30대 초반에는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피해자는 2018년 11월경(피고인을 고소한 이후 집을 나온 시점)까지 그러한 상태로 피고인과 함께 살았다.
(5) 피고인은 최초 성폭행 이후 초반에는 아침에 피해자를 비디오 가게로 데려다주고 저녁에 피고인의 집으로 데려왔으며, 피해자가 혼자 출근하더라도 비디오 가게로 전화하여 가게에 잘 있는지 확인하였고,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정지시키기도 하였다. 피고인은 비디오 가게를 그만 둔 2009년경까지 거의 매일 피해자와 함께 비디오 가게에서 퇴근하였고, 그 후로도 피해자가 밖에 나갈 때는 어디를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등을 확인하며 피해자의 생활을 통제하였다. 피해자는 원심에서 “수영 강습이나 조리사 자격증 취득과정을 다닐 때에도 몇 시에 나갔다가 몇 시까지 들어올 것인지 시간을 계산해서 피고인에게 미리 말하고 허락을 구해야 했고, 그 시간을 한 번도 못 지켜본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6) 피고인은 피해자가 20대 중후반(대략 2007년 내지 2008년경)이 될 때까지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오거나 자신의 말을 안 듣는 등 지시사항을 어기는 경우 재떨이로 머리를 가격하거나 주먹으로 팔, 허벅지 등 특정 부위를 집요하게 때리는 등으로 피해자를 폭행하기도 하고, 폭언을 하며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수기도 하였다. 피해자가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신체적 폭력은 잦아들었으나 폭언이나 물건 집어던지기 등 피고인의 난폭한 행동은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범행 무렵까지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7) 피고인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 피해자에게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거나 여고생을 납치하여 감금하고 사육하는 내용의 영화를 보여주면서 “너무 재미있다. 앞으로 세상은 이렇게 돌아갈 거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원심에서 “영화의 내용이 내 삶과 너무 비슷하고, 어디를 벗어나도 피고인이 쫓아올 것 같고 목줄에 매여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서 그 영화가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고 진술하였다.
(8) 피해자는 1999년경부터 2009년경까지 피고인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을 하였고, 비디오 가게 일을 그만둔 후 약 1~2년간은 집안일을 하며 지냈다. 2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위 기간 동안 피해자가 다른 외부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하거나 사회활동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피해자는 2014년~2015년경에 이르러서야 몇몇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의원에서 일하는 등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피해자는 비디오 가게에서 일할 때 피고인으로부터 급여로 처음에 월 30만 원 정도를 받다가 이후 2009년경까지 월 50만 원, 월 80만 원, 월 120만 원으로 점차 올려 받은 것이 사실상 유일한 수입이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피고인이 비디오 가게를 운영 하면서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해자 명의 카드로 다액의 대출을 받는 것을 용인하며 피고인이 갚지 않는 이상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채무를 부담하기도 하고, 2009년 10월경 피고인이 데리고 간 금은방에서 금반지를 맞출 때 “반지는 상대방끼리 서로 사줘야 한다.”는 피고인의 말에 피고인의 금반지 대금을 계산하기도 하였다.
(9) 피해자는 1999년경 최초 성폭행부터 반복적․계속적으로 이어진 피고인과의 원치 않는 성행위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다가 2018년경 수영장을 다니면서 호감을 갖게 된 공소외 1이 피해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할 것을 권유하면서 2018. 11. 21. 비로소 피고인을 고소하였다. 피해자는 수사기관 이래 원심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외삼촌이어서 다른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었고, 근친상간이라 누가 알까 봐 무서웠다. 누구에게 알리면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내가 손가락질 당할 것이 두려웠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10) 피해자는 피고인을 고소한 뒤에야 스마일센터에서 약 8~9개월간 심리 상담을 받고, 2019. 9. 5.부터 2020년 7월경까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피해자의 진단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다. 수사 당시 작성된 피해자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의견서(2019. 3. 22. 자 작성)에 따르면, 피해자는 외상적인 사건을 만성적으로 경험한 뒤 분노감과 적대감, 불안감과 두려움, 우울감과 불행감, 수치심과 자기 혐오감 등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 사건과 관련된 침투 증상, 과각성 증상, 회피 반응 등을 경험하고, 이로 인하여 일상생활에서 적응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PTSD)’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원심에서 이루어진 피해자에 대한 정신의학감정 보고서(2021. 1. 8. 자 작성)에서는 “피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속적 우울장애,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것으로 판단되고, 늦어도 20대 초반 이후 경계선 성격장애 증상이 발현되었다고 판단된다. 피해자는 위축형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성을 보여 불안정한 자아상과 지속적 정서문제로 원만한 대인관계의 형성을 어려워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지속적인 사회생활 유지가 어렵고 특정 대상에게 의존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르거나 가학․피학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나) 위와 같은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 각 항의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본다. 피해자는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의 이혼과 보호자인 아버지의 사망, 경제력 부재 등으로 마땅한 거처가 없는 상황에서 심리적․경제적으로 위축되어 사실상 보호자로 여기고 의존하던 14세 연상의 외삼촌인 피고인으로부터 19세 무렵 최초 성폭행을 당하였고, 그 충격의 영향 아래 피고인의 지속적인 폭행, 폭언과 통제, 애정과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양면성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간음행위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친족관계 내에서 심리적․경제적으로 강한 지배․예속관계를 형성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볼 때, 피해자는 위와 같은 심리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로 인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하여 자유로운 의사 형성과 결정에 심각한 곤란을 겪고 주변과 단절된 채 피고인의 강압적인 성행위 요구에 자포자기 상태로 순응하여 오면서, 그와 같이 지속된 심리적 억압 상태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여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범행 당시 피고인의 행위가 성적 폭력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대항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심리적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고 볼 소지가 크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것은 준강간죄를 구성할 수 있다.
(1) 피해자는 부모의 이혼과 양육자인 아버지의 사망으로 중학교 졸업 전부터 적절한 돌봄이나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경제적으로도 곤궁하였다. 14세 연상의 외삼촌인 피고인은 그러한 피해자에게 일자리와 생활기반을 제공해 준 보호자와 같은 존재였고, 미성년인 피해자는 피고인을 믿고 의지하며 주거지 제공, 생활비 마련 등에서 절대적인 피보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2) 그런데 피고인은 1999년경 당시 19세에 불과하고 사회적 경험도 부족한 피해자를 강간하였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엄청난 충격과 공포심, 위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최초 성폭행 이후 피해자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반복된 강압적 성행위와 피고인의 지시를 거부할 경우 뒤따르는 폭력적 언동, 피고인의 집에서 함께 거주하며 적어도 피해자가 비디오 가게에서 일한 2009년경까지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출․퇴근 등 외출 통제와 생활 간섭, 20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 이어진 신체적 폭행과 그 후로도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행위 시까지 반복․계속된 폭언과 욕설, 물건 부수기 등 피고인의 위협행위는 피고인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피고인은 때로 기형적인 사랑 표현과 자상한 태도로 친밀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피고인의 태도는 피해자의 정신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면서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1999년경 최초 성폭행 이후 형성된 지배․예속관계를 더욱 강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예비적 공소사실 각 행위 무렵 피고인의 폭행이 없었다거나 그 정도가 약화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피고인이 강력한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 있었음을 방증한다.
(3) 피해자는 최초 성폭행을 당할 때부터 성적 자기결정 의사를 철저히 묵살 당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성행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행위 여부, 시기, 장소 및 방법은 오로지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진행되었는바, 피고인조차 검찰에서 “19년 동안 피해자가 딱 한 번 성행위 요구를 거절한 적이 있는데, 피해자가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돌아올 때 마중을 나갔다가 모텔이 있어 들렀다가 가자고 했을 때이다.”라고 진술한 바 있을 정도이다.
피해자가 거부하더라도 피고인의 폭력적․위협적 행동만 강화될 뿐 끝내 피고인의 요구대로 이루어지고 마는 일련의 성행위와 저항 실패의 누적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점차 무력화시켜 자신에게 더 이상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 가능성이 없음을 지각하고 체념하게 하여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순응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를 양육․부양하는 부모 등의 부재를 메우는 정신적․물질적 지주의 지위에 있는 외삼촌과 그의 보호를 받는 조카라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친족관계적 특성, 피고인이 통제 가능한 피해자의 일상, ‘피해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행해지는 성폭력, 근친상간이 주는 위축감, 동거인인 노령의 외조모 또한 외삼촌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보인 무관심과 냉랭한 태도, 피해사실을 알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족관계의 부정적 변화 등은 피해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순응하는 척 해야 빨리 끝난다. 내가 죽었거나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을 해야 생활할 수 있다.”는 피해자의 진술, 피고인과 차를 타고 이동하여 식사를 하고 모텔로 간 다음 피고인이 피해자의 질 내에 피임약을 주입하고 성행위를 하는 같은 패턴의 기계적․피상적 성행위 모습(예비적 공소사실 포함)은 이와 같은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뒷받침한다.
(4) 피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속적 우울장애, 위축형 경계선 성격장애 등의 특성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장애들은 1999년경 있었던 피고인의 최초 성폭행 범행부터 장기간에 걸쳐 이어진 피고인과의 비정상적인 지배․예속관계 등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자명해 보인다. 전문심리위원 공소외 2 등 전문가들도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무력화되어 피고인의 성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5) 원심은 피해자가 2015년경부터는 자립이 가능할 정도의 독자적인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피해자는 1999년경부터 적어도 13년 이상 피고인에게 경제적으로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고, 피해자가 점진적으로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 받은
급여도 2014년~2015년경 월 50만 원 또는 월 100만 원(한의원, 장애인근로공단 취업), 2016년~2017년경 월 150~160만 원(□□병원 간호조무사 취업) 남짓에 불과하여 피해자는 경제적으로 여전히 취약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자금 부족
해결을 위해 자신의 카드로 다액의 대출을 받는 것을 용인하거나 피고인의 금반지 대금을 결제하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 것은 피고인에게 예속된 특수한 친족관계에서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6) 원심은 피해자가 심리적 항거불능 또는 현저한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면서 대체로 2015년 이후에 있었던 위 나의 2)항과 같은 사정들을 들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경제적 독립능력이 전혀 없지 않고 생활이 전면적으로 통제되지
않았으며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피고인의 집을 스스로 떠날 기회가 있었던 사정 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가 최초 성폭행을 당한 1999년 무렵부터 오랜 기간 피고인에게 정신적․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생활하였고 그 과정에서 지배․예속관계가 형성, 고착화되어 ‘피고인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고 따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나 선택지가 없다’는 심리적 억압 상태가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억압 상태가 해소되거나 질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볼 때, 피해자는 2015년 이후에도 위 나의 2)항과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강압적 성행위 요구에 대하여 맞설 수 있는 대항능력이 여전히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수동적, 기계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소지가 크다. 피고인의 생활 통제가 약화된 것은 장기간에 걸친 지배․예속관계의 고착으로 보다 쉽게 피해자의 심리적 억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변태적 성행위 요구나 나체사진 촬영 요구를 거부한 것은 오히려 피고인이 관철시키고자 했다면 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강력하게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피해자가 예비적 공소사실 무렵인 2015년부터 2018년경까지 몇몇 취미․사회활동을 하면서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원심이 언급한 사정 또한 피해자가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성행위 당시에 처한 심리적 항거곤란 상태를 부정할 만한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미성년 시절 최초 성폭행 이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뒤 30대 중반 무렵에야 뒤늦게 나타난 피해자의 위와 같은 외형적 모습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하는 본능에서 성적 학대와 일상의 삶을 분리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생존 심리의 외부적 표출로서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고소 직후에 이루어진 임상심리전문가의 피해자에 대한 심리학적 평가의견서, 수사 과정 및 원심 단계에서 이루어진 피해자에 대한 전문가의 심리학적 감정의견 등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속적 우울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등의 증상은 이를 뒷받침한다. 원심 전문심리위원 공소외 2는 “심리적 생존을 위해 피해자들이 성적 학대에 순응하며 성적 학대와 일상적 삶을 분리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외견상으로는 비교적
적응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일상적 기능이 가능하였는지 여부는 사건 당시 피해자가 성행위와 관련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온전히 가능한 상태였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감정증인 공소외 3 또한 “장기간 성폭력에 노출된 사람도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피해자가 어느 정도 직업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간헐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그 외에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는 어려웠던 것이 분명하다.”고 진술하였다.
(7) 이 사건은 피고인이 우월한 친족관계를 이용하여 피보호자인 피해자를 미성년일 때 강간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없는 심리적, 정서적 억압 상태의 기본 구조를 형성한 다음, 정신적․경제적 지배․예속관계 아래 피해자의 20대 시기 동안 지속적인 폭력, 성적 학대와 감시, 통제 등을 통하여 이를 강화하고, 예비적 공소사실 각 범행 당시까지 이러한 기본 구조를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한 사안이다. 그 안에서 피해자는 오로지 피고인의 결정과 요구에 따라 같은 패턴의 기계적․피상적 양상으로 성행위에 응하는 태도를 반복하여 왔고,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간음행위 또한 그러한 태도 속에서 이루어졌다. 19년에 걸친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하여 형성한 심리적 억압 상태의 기본 구조가 소멸 또는 단절되었다고 볼 만한 별다른 계기를 엿볼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뒤늦게나마 피고인의 통제를 피하여 자립을 위한 노력을 시도하고, 마침내 피고인의 성적 침해행위로부터 어렵게 탈출하게 된 것을 들어, 공고히 형성된 심리적 억압 상태의 기본 구조에서 이 부분만을 분리하여 예비적 공소사실 각 범행 당시 피해자가 자율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이 곤란할 정도로 피고인에게 억압당하였거나 통제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사정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8) 피고인은 피해자를 사랑하였고 피해자와 부부처럼 생활하며 합의 하에 성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는 보통의 부부나 연인관계와 달리 피고인이 조카인 피해자를 상대로 저지른 최초 성폭력 범행 이후 그들 사이에 수직적이고 내밀한 지배․예속관계로 형성되었고, 그 후 기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피해자가 피고인의 요구에 따라 모텔에서 기계적인 성행위를 반복하는 모습으로 확인될 뿐이다. 피고인과 피해자 서로 간에 통상적인 부부나 연인관계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교류 또는 피고인과 피해자 외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나 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고, 성폭력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벗어나 통상적인 범주의 이성관계로 변화하였다고 볼 만한 계기나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 피해자가 온전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심리적 항거곤란 상태에 놓인 탓에 보인 무저항․무반응을 마치 피고인이 주장하는 기형적인 관계를 받아들이고 성행위에 동의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3) 소결론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있었던 최초 성폭력 이후 예비적 공소사실의 각 간음행위가 있기까지 단절 없이 반복․계속된 성적 행위와 그 과정에서 형성된 지배․예속관계 및 그러한 관계가 장기간 지속되게 된 사정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판단하지 아니한 채 예비적 공소사실 행위 무렵 피해자가 보인 단편적인 모습이나 직업적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한 사정 등에 주목하여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성폭력처벌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죄의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채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3. 파기의 범위
원심판결 중 예비적 공소사실 부분은 파기되어야 하고, 위 부분은 주위적 공소사실 부분과 동일체 관계에 있으므로, 주위적 공소사실 부분 역시 함께 파기되어야 한다.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가 파기되어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